코드를 짜던 사내

200X년 한강 시민공원 
200X년 을왕리 해수욕장
박실장,
너는 한때 빛나는 코드를 짜던 사내였다.
밤을 새워 키보드 두드리던 그 소리가
별빛보다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지.
버그 하나 잡겠다고 커피를 들이켜던
그 열정, 그 야성 — 기억나느냐.
그런데 이게 뭐냐,
지금은 모니터 불빛 아래,
남의 총소리와 채팅창 속 욕설에 묻혀
네 눈동자가 녹슬고 있구나.
게임 속에서만 ‘리셋’이 있고
너의 하루엔 ‘세이브 포인트’도 없구나.
박실장,
세상은 늘 버전업 중이다.
너만 구버전으로 멈춰 있으면,
결국 네 인생은 지원이 종료될 거다.
패치 노트도 없는 인생,
오류 메시지 같은 하루하루를
언제까지 디버깅하지도 못한 채 살 거냐.
너는 아직 젊다,
하지만 젊음은 메모리처럼 휘발된다.
저장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백업하지 않으면 후회로만 남는다.
너의 손끝이 다시 세상을 바꾸던
그날을 떠올려라.
피씨방의 퀘스트는 끝이 없지만
인생의 퀘스트는 네가 써야 한다.
남이 만든 게임 속에서
승리 좀 했다고 인생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간에 네 삶의 코드를 다시 짜라.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나는 안다.
사는 게 버그투성이란 걸.
하지만 인생의 버그는
도망친다고 고쳐지지 않는다.
고쳐야 한다, 끝까지.
그게 개발자였던 네 혼의 의무다.
박실장,
커피 한 잔 들고 새벽 공기를 마셔라.
모니터 대신 하늘을 켜라.
별들은 여전히 네 소스를 기다린다.
세상은 아직 업데이트 중이다.
그리고 너 역시,
재시작할 수 있다.
2025년 10월 14일 새벽
글: 최상무 (본명 Christopher Choi)
사진자료 제공: 박실장